4차 중동전쟁과 1차 오일쇼크∙이란 혁명과 2차 오일쇼크∙2022년 스테그플레이션 위기
70년대는 4차 중동전쟁으로 빚어진 '1차 오일쇼크' 사태와 이란 혁명으로 시작된 '2차 오일쇼크'가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는 고물가, 경기둔화라고 불리는 '스테크플레이션'을 겪게 되는데요. 오일쇼크 사태의 발단 원인과 경제여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차 중동전쟁과 1차 오일쇼크
4차 중동전쟁 - 욥 키프프 전쟁(1973. 10. 6 ~ 10.25)
19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공격하면서 발발한 '3차 중동전쟁'에서 6일 만에 승리한 이스라엘은 막대한 영토를 획득(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 고원', 요르단의 '서안지구')하였고 이에 복수에 칼날을 갈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연합군이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을 상대로 선제공격한 전쟁
전쟁 초반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과 이스라엘의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이집트와 시리아 중동 연합은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는데 10월 6일은 유대교의 최대 종교행사였던 '욤 키프르' 날 일명 '속죄의 날'이었던 터라 군인들이 대규모 휴가를 나가 경계가 느슨해진 점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 됩니다.
전쟁 발발에 휴가를 갔던 군인들을 긴급히 복귀시켰지만, 수에즈 운하를 두고 이집트와 대치했던 이스라엘의 최전방 부대는 적은 숫자로 버텼지만, 미리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던 이집트 육군은 소련제 무기를 무장하고 이스라엘의 전차 150대를 파괴시키면서, 당시 중동 최강의 기갑부대를 상대로 초전에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공군을 투입하여 진군을 늦추려 했지만, 이집트의 지대공 미사일로 인하여 공군 전력의 10%를 잃게 되면서 후퇴를 거듭했고 이집트는 파죽지세로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합니다. 이스라엘은 2개의 기갑사단을 투입하여 이집트의 진격을 늦추는 데는 성공하지만 300여 대의 전차가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전쟁 중반
한편 골란고원 측에서 공격을 시작한 시리아도 연승을 거듭하며 갈리리 호수 근방까지 진격을 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이집트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한 시리아를 먼저 몰아내기 위해 시리아 쪽으로 기갑사단을 투입하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고전 끝에 방어선을 지켜냈고 골란고원까지 시리아군을 몰아냅니다.
이집트 전선에서 계속된 패배로 이스라엘은 총 동원명령을 내리고 다급히 미국의 지원을 요청하지만, '베트남 전쟁 패배'의 후유증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혼란기를 겪던 미국은 이스라엘 보다 자국 정치적 안정이 더 중요했습니다. 지원 요청에 미국이 반응이 없자, 이스라엘의 지도부는 '전술 핵폭탄'을 이집트와 시리아에 사용하려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았냐면은 17개의 여단이 전멸될 정도로 몰리고 있었습니다.
전쟁 후반
미국에 만류에도 이스라엘은 핵무기 사용을 고집했고 미국은 소련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이 대화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소련은 이집트에 핵무기를 지원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핵무기 사용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스라엘 '골다 메이어' 총리와 한 시간의 비밀회동 후에 대대적인 군사 지원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최신 전투기인 F-4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이스라엘까지 직접 날아갔고 미 해군의 항공모함은 최신 지상공격기 A-4를 이스라엘의 근해까지 배달시켜줬습니다. 또 군사위성으로 이집트와 시리아 군의 이동경로를 이스라엘 군에 제공하면서 전쟁 막바지에 기적에 전세역전을 하게 됩니다. 미국의 최신 무기들과 군사위성을 동원하여 시리아의 몰아냈고 급기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폭격하게 되면서 시리아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양방향 전세가 시리아의 패배로 모든 군을 이집트 쪽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던 이스라엘 군은 다시 수에즈 운하까지 이집트군을 내몰고 이집트 주력 3군단을 포위하면서 사실상 전쟁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 3군단을 몰살시키려 했지만, 미국과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여 더 이상의 살상과 진격은 용납 못 한다고 경고를 하면서 이스라엘도 한발 물러서며 종전이 됩니다.
1차 오일쇼크
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우세했던 전쟁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역전하자, 미국에 반기를 든 중동 산유국 OPEC은 이집트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원유를 매월 약 5% 정도를 감산하기 시작합니다. 감산에 참여한 국가는 리비아, 이라크, 이란, 튀니지, 시리아,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이며, 비 OPEC 국가인 소련도 이에 참여하면서 미국과 서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을 줄였습니다.
급기야 미국과 영국에 감산량만큼의 원유 수출 제한을 시작하자 시장은 요동쳤고 배럴당 2.5 달러였던 원유는 12달러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은 중공업이 발전하는 단계로 자칫하면 큰 위기가 될 뻔했습니다. 물가는 3.5% 정도에서 25% 까지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었지만, 그나마 경제가 급성장하는 시기여서 경제위기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란 혁명과 2차 오일쇼크
2차 오일쇼크의 발단 '이란 혁명'
이란 혁명은 입헌군주제 체재에서 공화국으로 개혁한 혁명입니다. 이란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교 최고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권력을 취하면서 1979년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1963년 백색혁명(1963년 ~ 1978년)
팔라비 왕조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하에 친 서방 정책을 펴고 1963년부터 '백색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 백색혁명
- 토지개혁
- 여성 참전권 강화, 교육 이슬람식 복장 착용 금지
- 서구식 근대화 작업
1차 오일쇼크로 원유가 상승하자 주요 산유국인 이란은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였고 국왕은 왕가를 지지하는 고위층들에게 국가사업의 독점을 부여했습니다.
특정 기득권층들과 국민들 간에 빈부격차는 급속도로 커졌고 왕권의 안정화를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높은 인플레이션에 이어서 생필품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국왕의 독재가 민심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으며, 국왕이 이슬람교 교리에 반하는 정책을 펴자, 이슬람 원리주의 종교 세력도 국민들과 합세하여 1977년부터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합니다.
1978년 '이란 혁명'
1978년 8월이란 아바단 소재의 '시네마 렉스 극장'에서의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고 민간인 420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란 제국은 '반정부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고 반정부 세력들은 정부 산하 비밀경찰인 '사바크(국가정보 안보기구)'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9월 시위는 격해져 테헤란 동부지역에서 대규모 시위 일어나자 정부는 군∙경을 동원해 유혈진압을 합니다. 사바크는 반정부 세력들을 불법 체포하고 고문을 자행하였으며 반대 정치세력들을 구속시켜 버립니다.
이후 민심과 여론이 더 악화되자 이란 국왕은 '입헌군주제로 개헌'하고 여러 개혁정책을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발표합니다.
- 언론 자유 허용
- 정치범 사면
- 세금 감면
- 사바크 해체
결국 민심의 거대한 힘을 본 이란의 거대 정당들은 국왕의 개혁정책과 개헌에 반대하고 팔라비 국왕의 즉각 퇴임을 요구했습니다. 1979년 1월 16일 국왕은 퇴임했고 이집트로 망명합니다. 3월에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정권을 휘어잡고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게 됩니다.
2차 오일쇼크
이 혁명으로 78년 9월부터 시작된 파업이 11월에 대규모 파업으로 번지자,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60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까지 감산하게 됩니다. 추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1979년 1월 200만 배럴을 감산하면서 공급 감소 문제를 더욱 키우게 됩니다.
1979년 3월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다시 증산을 하였지만 원유 가격은 요동쳤습니다. 이때 국제유가는 이미 12달러에서 30달러까지 상승했으며 원유 상승 문제는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1980년에 40달러 국제유가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라크∙이란 전쟁 (1980년 ~ 1988년)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을 선제공격하여 발발한 전쟁으로 1980년 9월부터 시작된 전쟁은 1988년 8월 20일 UN의 중재 안을 받아들이면서 8년간의 치열한 전쟁은 양측에 어떠한 이득없이 막을 내립니다. 전쟁 초기 이라크는 20만 명의 군인을 동원했고 이란은 15만 명이었으나, 말기에는 이라크 150만 명, 이란 70만 명이라는 대군끼리 붙은 대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라크 측 30만 명 사망, 이란 측 70만 명 사망이라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치열한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이라크 수니파∙이란 시아파 간에 종교적 갈등
- 국경 문제,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영유권 확보와 경계선 문제
- 아랍인과 이란인의 민족적 갈등
결정적 원인으로 뽑자면 종교 갈등인데요. 이라크 국민의 이슬람교 종교 구성 비율은 수니파 40%와 시아파 60%의 구성입니다. 수니파가 수백 년 동안 이라크의 정치를 독점했고 시아파들은 박해와 억압을 당해왔습니다. 이란의 시아파 종교인이 정권을 잡자 이라크 시아파인들은 한껏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라크 수니파 지도부는 이란 침공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지지를 얻고 미국의 무기 원조까지 받아 전쟁 초기 우세했지만, 이란의 호메이니가 전 국민 동원령을 내리고 팔라디 왕권 시절 미국의 첨단 무기들(F-14 톰캣 등)을 앞세워 8년 동안이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양국 모두 각각 5,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보았으며 이후 중동에 맹주 자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1980년 최악의 스테그플레이션
원유는 1978년 12월 배럴당 12달러에서 1980년 중반 40달러까지 상승하면서 전 세계의 물가는 20 ~ 30%가 오르게 됩니다. 미국은 물가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를 21%까지 인상해 버리면서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세계경제는 초토화됩니다.
당시 한국의 물가는 30% 까지 치솟았고 금리는 20%대까지 오르는 등 기업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GDP 성장이 79년도에 9% 였던 것이 80년도에 -1.6% 대가 되면서 경제가 한때 최악에 상황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1980년 부터 시작된 스테그플레이션과 산유국 경제
이후 세계경제는 파탄 났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변화되면서 무한경쟁을 시작합니다.
1980년 부터 세계경제가 기울자 OPEC은 국제유가 하락을 방어코자 감산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외 다른 산유국들은 감산할 생각이 없었고 85년도에 사우디가 증산을 하자 28달러였던 유가는 14달러로 폭락하였고 이렇게 1년간 국제유가 치킨게임을 하다가 결국 1986년 OPEC은 감산에 합의합니다. 산유국들은 원유 호황이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85년 국제유가 폭락을 계기로 베네수엘라, 멕시코, 알제리, 소련의 경제는 파탄 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6년 후 1991년 소련은 결국 경제극복을 못하고 해체됩니다.
2022년 스테그플레이션 위기
2022년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9.1% 상승하는 통계자료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의 2022년도 물가 인상률은 1980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최대폭의 상승이라 미국 연준(FED)은 매월 큰폭에 기준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인상됨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역시 가파르게 상승하여 22년 7월 기준 2.25%까지 올라왔습니다. 한국의 1,862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으며 가계의 소비둔화는 가속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리
4차 중동전쟁과 1차 오일쇼크∙ 이란 혁명과 2차 오일쇼크 그리고 스테그플레이션 현상과 당시 한국경제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후에도 산유국들은 원유를 무기화하기도 했고 감산에 실패하여 유가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증산하는 치킨게임을 반복해 왔습니다. 최근 2020년 3월 러시아와 사우디의 국제유가 치킨게임처럼 말이죠. 원유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우리나라는 부러운 한편, 이 원유로 인해 첨단산업을 육성하지 못하고 경제가 망한 산유국도 있습니다. 호황기에 포퓰리즘에 젖어 국민들에게 돈을 뿌리다가 국제유가가 하락하자 경제가 나락으로 간 대표적인 나라가 베네수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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