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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사형

jk-st 2022. 11. 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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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우리 민족의 마지막 왕조국가로 국교는 유교였으며 전제군주제의 정치 체계의 국가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사형이 있었는데요. 중국의 '대명률'의 영향을 받아 극악한 죄인 순서로 '능지처참, 거열형, 참형, 교형, 사사'의 다섯 가지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사형

가장 중한 형벌로 생명을 박탈한다 하여 '생명형'이라 합니다.

조선 시대 사형의 종류

  • 능지처참
    • 능지처참은 '사람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라는 뜻으로 흔히 반역자들이 받던 사형입니다.
    • 우선 중국 방식의 능지처참은 팔, 다리, 몸통, 머리등으로 산사람의 신체를 6개로 자르는 형벌이지만, 이 형벌이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다 여겨 조선 중기부터는 거열형으로 대체하였다고 합니다.
    • 팔, 다리를 말이나 소에 묶고 천천히 사지를 분리시키는 거열형으로 집행한 후 팔이나 다리가 분리되면 과다출혈로 사망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체를 6개로 토막 내었다고 합니다.
    • 이런 거열형 조차도 잔인하다 여겨 조선 후기 부터는 먼저 목을 베고(참형) 난 후 사체를 토막내었다고 합니다.
    • 기본적으로 효수하여 사체를 여러 사람들이 볼수 있게 나무에 걸어 두었으며 장례를 치룰수 없게 하여 시신을 매장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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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열
    • 팔, 다리를 말이나 소에 묶어 죄인의 사지를 자르는 형벌로 사실상 조선시대 최고형이었습니다.
    • 거열형 또한 효수한 후 매장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참형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형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참형
    • 죄인의 목을 베어 죽이는 참수형으로 사극 드라마에서 망나니들이 칼에 술을 뿌려가며 춤을 추고 난 후 무릎을 꿇은 죄인의 목을 칼로 쳐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사형 방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나무판에 죄인을 눕히고 큰 칼로 머리를 내려쳐 목을 베는 사형 방식입니다.
    • 망나니라는 직업은 당시 전문 직업군으로 참형을 집행하고 나라에서 주는 수고비를 받아 생활을 하였는데, 사형 집행 외 다른일은 못 하게 하여 항상 궁핍하게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 그래서 사형수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죄인을 최대한 고통없이 한 번에 죽여달라고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고 칼을 대신 갈아주기도 했는데 이것을 ‘속참행하(速斬行下)’라고 합니다.
    • 사실 한번에 목을 베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칼날을 미리 갈아두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돈을 주지 않은 죄인은 일부러 여러 번 목을 쳐내어 고통스럽게 죽이거나 칠 듯, 말듯 하면서 죄인을 놀리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 참형 역시 효수하고 경우에 따라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형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교형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교형
    • 오늘날에 교수형이랑 동일합니다. 이 또한 신체를 자르는 참형보다 비교적 가벼운 사형법이었고 보통 군율위반자, 절도, 강상죄(존속살해) 등의 죄인에게 내려졌습니다.
    • 그러나 강상죄를 범한 경우 자식과 배우자는 노비로 삼는 등 효를 중시하는 조선에서는 비교적 중대범죄이기도 했습니다.

사사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사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사사
    • 왕이 죄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으로 고통스럽긴 하지만 유교를 국교로 따르는 조선인들에게는 가장 선호했던 사형방식입니다.
    • 능지처참, 거열, 참수 등은 죽은 후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 하게 하는 반면 사사는 사망 후 유가족들이 시신을 회수하여 장례도 치르고 제사도 올릴 수 있었습니다.
    • 또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 조차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니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유교사상을 믿던 조선인들에게 사사는 가장 선호하던 사형 방식이었습니다.
  • 효수 ∙ 효시
    • 죄인을 거열하거나 참수할 때 시장이나 저잣거리(시내)에서 경각심을 주는 의미로 대중 앞에서 행하였는데 이것을 효수 또는 효시라고 합니다. 즉 공개 사형을 말합니다.
  • 부관참시
    • 이미 사망하여 매장한 시신을 관에서 꺼내어 시신을 참수하고 효수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서는 매우 큰 죄가 죽은 후에 드러났을 경우 행하였습니다.
    •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행하였으며 대표적 부관참시 대상자는 '한명회, 김종직, 김옥균' 등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사형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었지만 장형(곤장) 또는 난장형(여러 명이 죄인 한 명을 몽둥이로 때린다) 만으로도 즉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 어떤 형벌이든 조선시대에는 가혹한 형벌이기도 했습니다.

 

2022.11.11 - [분류 전체보기] - 조선 시대의 유배형

 

조선 시대의 유배형

유배는 조선 시대의 형벌 중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로 죄를 지은 사람을 멀리 보내, 수년 또는 죽을 때까지 타지에서 감금시키는 형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귀양살이라고도 했으며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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